- ▲ 분당 지역 한 아파트 단지의 노후배관 모습. 관 안쪽에는 녹찌꺼기와 화학물질이 쌓여 종양처럼 늘어 붙었고,
관 바깥쪽도 심하게 부식 돼있다. /조의준 기자
분당의 한 아파트 입주민 협의회장인 고모씨는 “강철관을 쓰다 보니
녹물이 더 많이 나오고, 배관의 안팎에서 동시에 부식되기 시작했다”며 “현재로서는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라고 말했다. 그는 “이 같은 부식
현상은 서현동, 수내동 등 분당에서 가장 먼저 아파트가 들어선 곳에서는 공통적인 현상”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서현동의 한 아파트에
사는 전모(35)씨는 “아침에 세수를 하려면 1~2분간 물을 흘려 낸 보낸 다음에 손을 넣는다”며 “밥은 생수를 사다 짓는다”고
말했다.
◆피해 막심=단지 녹물에 그치지 않는다. 배관 안쪽에 녹과 불순물들이 화학작용을 일으켜
종양덩어리처럼 달라 붙으면서 물의 흐름을 막고 있다. 수돗물과 수도요금이 낭비될 뿐 아니라 고층에 사는 주민들은 수량 부족으로 샤워조차 못하는
경우도 있다.
실제로 지난 9일에는 D아파트의 배관이 터지기도 했다. 또 정수기를 쓰더라도 정수필터에 녹이 끼면서, 필터를 다른
곳보다 여러 번 갈아줘야 하는 문제도 생겼다. 수내동의 한 아파트는 3~4개월에 한 번 꼴로 수도 배관이 터져 지하 기계실이 잠기고, 부식된
배관 곳곳에서 누수가 생길 정도다. 관리사무소에서는 거의 매일 배관 일부를 교체하거나 누수부위를 고무로 감싼 뒤 조이는 작업을 벌이고 있다. 이
아파트의 경우 즉시 수리를 하기 위해 아예 공사용 자재를 주차장에 쌓아놓고 있다.
◆수리 비용 세대당
300만원=그렇다고 대대적이 수리 공사를 하기도 힘들다. 아파트로 들어오는 배관은 난방용, 냉·온수용·수돗물·소방용 등 최소
4개로 이뤄진다. 여기에다 물을 위로 올리기 위한 모터도 새로 설치해야 한다.
2600여 가구 규모의 D아파트 단지의 경우 가구내
배관을 제외한 단지 내 공동배관 교체공사비만 70억~80억 원으로 추산된다. 가구당 300만원 정도의 만만찮은 수리비를 부담해야 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동신3단지와 정든우성 등 일부 아파트들은 아파트 관리비에 포함된 ‘장비수선충당금’을 이용해 수도배관을 교체했다. 이 배관 공사에도
세대당 약 50만원 꼴로 돈이 든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모든 아파트에 이 방법을 적용하는 것은 무리다. 한상문 분당 신도시
입주자 대표 협의회장은 “지난 5월 개정된 ‘성남시 수도급수 조례’에 따르면 전용면적 85㎡이하인 공동주택은 급수관의 세척 또는 교체에 필요한
비용을 보조·융자 받을 수 있다”며 “그러나 분당 아파트의 경우 단지내 평수가 다양해 혜택을 받지 못하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한 회장은
“단지별 상황에 맞게 배관교체 비용을 지원받을 수 있도록 시의회에 조례 개정을 적극 건의할 계획”이라며 “분당 지역 100여개 단지를 대상으로
입주민들의 서명을 받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돈을 빌리는 방법도 있다. 노후 배관 교체를 위해 에너지관리공단에 자금지원을 요청하면
일단 공사비를 공단에서 지원해준다. 그러면 이 돈을 각 세대가 60개월에 걸쳐 나눠 갚을 수 있다.
조선일보 2007.11.20
조의준 기자 joyjune@chosun.com